벨벳버즈소(Velvet Buzzsaw, 2018)
세계의 내로라하는 갤러리스트, 샐럽, 컬렉터로 붐비는 마이애미 아트페어에서 분주하게 커피 심부름을 하는 여자가 잇다. 매력적인 몸매와 까만 눈동자가 뇌쇄적인 그녀는 조세피나(자웨 에쉬튼)다.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꿈에 부풀어 갤러리에 취업했지만, 그녀의 주요 업무는 커피 심부름과 전화받기다. 그녀는 LA에 위치한 더 브로드 갤러리의 비서다.
그녀와 달리 미술계에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는 모프(제이크 질렐할)은 유명 미술비평가다. 갤러리스트들은 그가 어떤 글을 썼는지 촉각을 곤두 세우고, 소속 작가가 모프에게 저평가될까봐 전전긍긍한다. 모프와 조세피나는 우연한 계기로 앤조이 관계로 발전한다.
어느날, 퇴근길에 축쳐진 어깨로낡은 아파트로 돌아가던 조세피나는 집 앞에 널브러져 있는 시쳬를 발견한다. 노인의 눈동자는 멈춰 있었고, 그녀는 신고를 한다. 자연스럽게 들어가 본 노인이 살던 공간을 본 순간, 조세피나의 눈이 반짝인다.. 시선을 매혹하는 신비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캔버스들이 집 안에 널려있는 것이다. 조세피나는 몰래 그림들을 자신의 방으로 이동한다.
혼자 감당하기에 벅차다고 느낀 조세피나는 그 사실을 모프에게 고백한다. 모프 역시 그림을 본 순간 어안이 벙벙하다. 혹독한 비평을 쏟아내는 것이 일상인 그의 눈에도 그 작품들은 범상치 않다.
모프는 그 사실을 조세피나가 일하는 갤러리 대표인 로도라(르네 루소)에게 알린다. 로도라의 중개를 통해, 자신이 얻을 게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로도라는 혼자 타인의 작품을 차지하려고 했던 조세피나에게 딜을 제안한다. 조세피나와 로도라는 동맹 관계가 되어 작품을 상업화시키려 한다. 먼저 그림과 함께 죽어있던 노인의 정체를 밝힌다. 그의 이름은 베를린 디즈. LA출신인 그는 저소득층 가정에서 태어나, 아버지와 함께 살며 학대 당했다. 고아원 출신에 아동보호국에 자란 그는 경비로 일하면서 고립된 생활을 했다. 그의 외로웠던 삶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들어나면서 사람들은 더욱 신비로움을 느꼈다. 갤러리에 걸린 디즈의 그림에 컬렉터들은 열광했다.
LA의 현대미술관에서 일하던 그레첸도 아트딜러로 독립하면서 디즈의 작품에 관심을 갖는다. 디즈가 주목받을수록 그의 작품과 연관된 사람들은 점점 위험한 상황에 빠지기 시작한다. 그 징조를 가장 먼저 알아챈 사람은 모프다. 작품을 들 때마다 들었던 경외심은 두려움으로 그를 휩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디즈의 그림을 탐냈던 주변인들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목격한다.
모프는 그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디즈의 작품과 연관되어 있는 로도라, 조세피나에게 끊임없이 경고하지만, 처음에는 그의 말을 주의깊게 듣지 않는다. 디즈의 작품으로 취한 이득과 부를 포기하기가 아까웠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죽음을 피하려고 끊임없이 발버둥치던 모프, 죽음을 경험하기 전까지 자신만만했던 조세피나, 모두의 죽음을 목격한 후 디즈 작품을 소유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깨닫게 된 로도라. 결국 모두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화려하고 고급스런 미술계의 이면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 영화는 현실적이면서도 치밀한 미술계의 권력관계를 보여준다. 권력과 탐욕에 휩싸인 채 자신의 앞날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는 탐욕스런 인간의 모습은 씁쓸함을 준다.
"내가 죽은 후에, 내 작품을 모두 버려주시오."
디즈가 남긴 유언을 무시한 사람들은 고통의 소용돌이로 휘말리게 된다. 타인의 열정과 예술혼을 자신이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뭉게뜨렸을 때, 당사자들이 당한 고통은 처참하다. 누군가의 진심과 열정을 무시하는 일이 얼마나 끔찍한 행위인지를 느끼게 해준다.
옥션, 아트페어, 갤러리 같은 곳은 대중에게 가깝고도 먼 장소다. 누구든지 드나들 수는 있지만, 그 안에서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사람은 한정적이다. 거래가 이루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소유할 수 없는 고가의 미술품을 보는 순간, 우리는 괴리감을 느끼기도, 하고 동경을 갖기도 한다.
이 영화는 고귀하게 포장된 미술계에 대한 환상을 무너뜨린다.
잔인한 죽음들은 작가의 영혼이 담긴 소중한 작품들을 상업적 수단으로만 이용하는 미술계의 권력자들에 대한 응징처럼 여겨진다. 우리가 보고 있는 현대미술의 이면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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