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의 전설, 음악과 우정
피아니스트의 전설(1998)
1900년, 유럽과 미국을 횡단하는 버니지아호에서 버려진 아이가 발견된다. 아이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배에서 연료를 담당하는 노동자, 대니(빌 넌)이다. 성격좋고 리더십있는 대니는 배 안에서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한다. 아이는 배 안에서
노동자들의 방에서 자라고, 그들과 생활한다. 그리고 대니를 아버지라고 부른다. 아이의 이름은 대니 부드만 T.D. 레몬(팀 로스)다. 어느날부터 아이의 별명은 '나인틴 헌드레드'다. 부모도 호적도 없는 아이는 배 안에서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사랑받으면 성장한다. 대니는 틈이 날 때마다 나인틴헌드레드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영민한 아이는 대니를 잘 따른다.
어느날, 그를 지켜주던 대니는 불의의 사고로 배 안에서 사망한다. 나인틴 헌드레드는 홀로 배에 남는다. 배 안에서 외로운 시간을 보내던 아이는 어느 날, 피아노 앞에 선다. 그리고 숨겨진 놀라운 재능을 발휘한다.

나인틴 헌드레드의 피아노 연주를 우연히 목격한 사람들은 감동을 받아 그 자리에서 떠날 수가 없다. 섬세한 선율과 기교는 사람들의 감각을 울린다. 아마도 배에서 혼자 살아가야 하는 헌드레드를 위해 대니가 남겨준 선물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대니는 배 안에서 연주자로 살아가게 된다. 특별한 재능 때문에 호적이 없는 그이지만, 아무도 그를 내치지 못한다. 조용하고, 위트있는 성격 때문에 모두가 그를 좋아한다. 누군가의 콧노래를 연주로 재연해낼 수 있는 천재성과 작곡 능력까지 갖춘 세상이 낳은 천재다.

어느날 버지니아호에 그와 평생의 친구가 될 한 남자가 오른다. 바로 트럼팻 연주가 맥스(프루이트 테일러 빈스)다. 빈털털이이지만, 트럼팻 연주만큼은 자신감이 있다. 사람들과 친화력이 있고,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연주를 하는 맥스에게 헌드레드도 호감을 느낀다. 비록 배 안에서만 살아온 헌드레드이지만, 맥스의 어렵고 아픈 부분에 공감하고, 그를 격려한다. 배가 정박할 때마다, 맥스는 헌드레드에게 육지를 밟자고 제안하지만, 헌드레드는 조용히 거절한다.
헌드레드에게 육지를 밟는 일은 쉽지 않다.

어느날, 헌드레드는 배에 탄 한 소녀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깊은 눈과 뽀얀 피부와 귀여운 얼굴은 헌드레드에게 처음으로 이성적 호감을 느끼게 한다. 소녀가 하선할 날이 다가오고, 헌드레드는 고민한다. 처음으로 배에서 내려보고 싶은 감정이 드는 순간이다. 맥스와 상의한 헌드레드는 소녀의 목적지를 알아내고, 그녀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기 위해 하선을 결심한다. 그는 뱃사람들의 인사를 받고, 육지에서 내리려는데, 그의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뉴욕의 마천루들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가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낀다. 배 안에 있는 그의 친구들과 피아노가 육지땅을 밟는 순간, 사라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헌드레드의 심정을 이해해주는 유일한 사람은 맥스다.
"난 네가 다시 배로 돌아올 것 같았어."
헌드레드의 연주 실력은 점점 소문이 나고, 유명한 재즈 연주가가 그와 배틀을 하기 위핸 승선하기도 한다. 그에게 음반을 만들자는 오퍼도 오지만, 헌드레드는 세상과의 연결이 싫고, 두렵다. 그저 배에서 연주를 하고,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유람선 산업이 축소되면서, 배를 타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결국 버지니아호는 없어질 위기에 놓인다. 맥스는 배에서 하선하고, 헌드레드는 배에 끝까지 남는다. 누구에게나 이별의 순간은 있다.

결국 버지니아호의 운행이 중단되고, 배 안에서 헌드레드의 역할도 없어진다. 육지에 있던 맥스는 헌드레드를 수소문하지만, 그가 어디있는지 알 수 없다. 버지니아호를 폭파시킨다는 소식을 듣게된 맥스는 걱정하면서 확신한다. 헌드레드가 배 안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맥스는 어렵게 폭파전의 배 안에 진입하고, 구석에 있는 헌드레드를 발견한다. 맥스는 세상에 나가 함께 살자는 맥스의 권유를 단호하게 거절한다.
"난 이 배에서 자라고, 이 밖을 나가본 적이 없어. 이 안에서 살고, 연주하고, 생을 마감하는 게 내 삶이야."
"넌 내 삶의 진정한 유일한 친구야."
설득이 불가능한 헌드레드 앞에서 맥스는 눈물을 흘린다. 헌드레드는 맥스를 배에 두고 홀로 나온다. 버지니아호는 곧 폭파한다. 맥스가 헌드레드를 찾기 위해 폐허가 된 배 안으로 잠입하고, 그를 만나는 장면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우정'을 느끼게 해준다. 사회에서 일 때문에 만난 두 사람이 보낸 시간이 어쩌면 짧은 몇 년에 불과하지만, 함께 음악을 하면서 나눈 시간은 두 사람의 우정을 뜨겁게 해준다.
배에 헌드레드를 두고 나온 맥스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맥스는 헌드레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를 알기 때문에, 그를 설득할 수 없다. 헌드레드는 배 안에서 연주하고, 그 안에서 빛날 수 있는 사람이다육지가 곧 헌드레드라는 인간의 존재가 말살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맥스 역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헌드레드의 존재 가치를 지켜주기 위해, 그를 방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