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커밍제인(2007)
생각이 날 듯하여 열심히 적다가 지우는 일은 여자의 일상이다. 글쓰기 위해 골몰하다가, 창밖을 보면서 한숨을 쉬기도 한다. 넓은 벌판과 울창한 숲은 그녀에게 답답함을 주기도 하다. 그렇지만 매일 쓰는 일을 거르지 않는다. 글을 쓰는 일은 그녀의 인생의 소중한 부분이자, 전부다. 제인 오스틴의 이야기다.
제인은 영국 햄프셔의 가난한 목사의 딸이다. 도도하고, 지적인 그녀는 결혼적령기가 되면서 동네 남자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다. 그녀를 좋아하는 위즐리(로렌스 폭스)는 제인과 결혼하고 싶어서 안달이다. 위즐리는 재산이 많고 부유한 상속자다. 그와 결혼한다면 그토록 쓰고 싶은 소설을 쓰면서 여유있게 살 수 있지만, 제인의 마음은 좀처럼 움직여지지 않는다.
그런 제인의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난다. 런던에서 변호사로 일하던 그는 외삼촌의 권유로 시골 마을에 잠시 머물게 된다. 톰 르프로이(제임스 맥어보이)는 근사한 벨벳 자켓에 섹시한 미소를 지닌 도시 청년이다. 게다가 지적이고, 자기 의견도 명확한 남자다. 낭독회에서 만난 르프로이는 제인의 글에 대한 칼같은 조언을 하고, 제인은 화가 난다. 하지만 차도남같은 르프로이의 따뜻한 면을 보게 되면서, 그에게 매력을 느낀다.
르프로이와 제인이 만날 기회가 늘어나면서, 서로에게 빠져든다. 함께 숲을 거닐면 시간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고, 르포로이와의 대화는 제인에게 상쾌함을 준다. 자연스럽게 제인은 르프로이를 만날 때마다 얼굴이 밝아진다. 반면 위즐리와 시간을 보낼 때에는 무뚝뚝해지고, 할 말이 없다. 제인을 좋아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위즐리가 제인은 부담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그녀는 섣불리 두 사람 중 한 명을 선택할 수 없다.
마음이 끌리는 르프로이는 가난하고,
위즐리느 경제적으로 완벽했다.
고민하던 제인은 결국 우여곡절 끝에 르프로이를 선택한다. 물론 르프로이도 많은 갈등 끝에 제인에게 청혼한다. 그에게는 책임져야할 가족이 있었고, 외삼촌에게 받은 용돈으로 생활하는 처지였다. 사회초년병 변호사에 불과한 그는 법조인이 되기까지 후원이 필요한 처지였다. 판사인 외삼촌은 제인과의 결혼을 극렬하게 반대했다.
그렇게 어렵게 만난 두 사람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둘이 떠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르프로이와 함께 도망치는 길에 제인은 그의 지갑에서 편지 한 장을 발견한다. 그 편지에는 르프로이가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결국 제인은 르프로이와의 도망 계획을 접고, 다시 햄프셔로 돌아온다. 남자, 결혼 따위에 진절머리를 느낀 그녀는 글을 쓰는 세계로 깊이 빠져든다. 그렇게 그녀가 자신이 겪은 러브스토리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 <오만과 편견>이다. 완벽한 작가로 이름을 날리던 그녀는 런던의 어느 낭독회에서 다시 르프로이를 보게 된다.
르프로이를 봤지만, 선뜻 다가설 수 없다. 그 옆에 있는 아리따운 여장 아이가 보였기 때문이다.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 법조인으로 자리를 잡은 르프로이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최고의 여류작가로 인정받게 된 제인의 내면은 살짝 씁쓸해진다. 그녀의 슬픈 눈이 말해주는 것만 같다.
영화 <비커밍 제인>은 사회의 편견과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사고가 지배하는 시대에서 적응하고 성장한 한 여성작가의 삶의 일부분을 보여준다. 영화를 제인과 르프로이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보는 것만큼, 그녀의 작가관에 대해 들여다보는 작업도 소중했다.
사랑만큼, 쓰는 일이 중요했고, 쓰기 위해 사랑의 감정을 정리한 제인 오스틴.
만일 제인이 르프로이와 사랑에 골인하여,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 1800년대 시대상에 맞는 여자로 살게 되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본다. 아마 <오만과 편견>을 읽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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