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마음 속에 홀로 간직한 얘기들이 있다. 타인에게 꺼내기 힘든 얘기가 마음 속에 상처가 되어 저장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사람은 세상과의 소통을 두려워한다. 짙은 상처가 다시 반복되어 자신을 옥죄어올까봐 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무명 피아니스트가 있다.
폴을 피아노를 치는 서른세살의 청년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실력을 인정받고, 콩쿠르에 나가지만 우승한 적은 없다. 지금은 댄스교습소에서 피아노를 치며,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그의 든든한 후원자는 두 명의 이모다. 바로 애니(베르나데트 라폼)과 안나(헬렌 벤상)이다. 일찍 세상을 떠난 폴의 부모를 대신해, 두 이모는 폴을 극진히 보살핀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이지만, 폴이 피아노를 계속 칠 수 있도록 후원하고, 사람들에게 그를 소개한다.
피아노를 치다 이따금 답답함을 느끼는 폴은 현관문 앞의 칠판에 행선지를 적어놓고, 외출한다. 그저 동네를 배회할 뿐이다. 어느날, 홀로 빌라의 계단을 오르던 폴은 이상한 힘에 이끌려 옥상에 있는 집으로 향한다. 그곳엔 경험하지 못했던 자연의 세계갸 펼쳐져 있었다. 바로,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이다.
그곳은 몽환적인 장소였다. 곳곳의 식물을 둘러보며 상념에 빠진 사이, 날이 선 여자가 폴에게 말을 건다. 바로 정원의 주인 마담 프루스트다. 폴의 윗집에 사는 그녀는 옥상에 위치했다는 점을 활용해, 몰래 정원을 꾸며 놓았다. 프루스트는 폴에게 정원을 꾸민 것을 비밀로 해달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폴에게 따뜻한 홍차를 대접한다. 폴은 프루스트의 정원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의 이상징후를 발견한 프루스트는 폴에게 다시 방문할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폴과 마담 프루스트의 은밀한 만남이 시작된다.
폴은 시간이 날 때마다 프루스트의 정원에 방문한다. 홍차를 마시면서 마들렌을 한 입 베어 물으면 그는 자연스럽게 눈을 감고, 꿈에 잠긴다. 그는 꿈 속에서 자신의 어린시절을 본다. 젊은 부부는 세 살 남짓 되는 아이와 신나게 시간을 보낸다. 해변을 가고, 집 안에서 목마를 태워주고, 사랑으로 아이를 보살핀다. 폴은 그게 자신의 어린시절이라는 것을 느낀다. 그렇게 사랑받았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폴은 마음의 평화를 느낀다.
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이모들은 폴이 아스파라거스를 가져오는 것을 보고 수상하다고 생각한다. 마담 프루스트가 '기억을 씻고, 오줌으로 배출하는 기능'이 있다면서, 옥상의 텃밭에서 재배한 것을 준 것이다. 물론 폴에게 이 상황에 대해 물어도, 그는 대답이 없다.
마담 프루스트와의 비밀을 간직한 폴은 자신의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마담 프루스트는 폴의 트라우마를 해소해주기 위해 노력한다. 겉으로는 한없이 시크하고, 이기적인 여자로 보이지만, 그그녀에게는 분명 이타적인 측면이 있다. 그는 폴의 가족들이 없는 사이, 그의 집에 들어가 폴의 어린시절 가족사진을 발견한다. 그리고 폴이 말을 하지 않는 이유가 '부모의 죽음'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추측한다. 상대의 문제점을 파악했다는 점은 폴의 트라우마를 해결하는데, 적극적으로 작용한다. 마들렌과 홍차를 먹고, 눈을 감은 폴에게 프루스는 말한다.
엄마는 너의 뿌연 기억에 있어
기억은 물고기처럼 물 속 깊은 곳에 숨어있어
<마담 프루스트의 정원> 중에서
폴은 피아노 콩쿠르를 준비하면서, 이웃의 소개로 첼로를 치는 '미셸'을 소개받게 된다. 모태솔로인 폴과 중국인 입양아인 미셸은 서로 호감을 갖게 된다. 마담 프루스트는 폴의 연애를 지켜보며 조언하기도 한다.
서른 세살의 폴은 그렇게 어른이 된다.
영원한 비밀을 없다. 부쩍 기분이 좋아보이는 폴이 혹시 마약을 하는지 의심하면서 추적하다가 그가 옥상 정원에 사는 여자를 방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모들은 폴이 마담 프루스트가 몹쓸 약을 건네 망가지고 있다고 ㅅ애각한다. 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있던 마담 프루스트와 폴의 인연은 그렇게 끝이 난다.
네가 추억을 낚고 싶을까봐..
필요한 추억을 마련했어
나쁜 추억은 행복의 홍수 아래 가라앉게 해
내가 바라는 건 그거야
<마담 프루스트의 정원> 중에서
마담 프루스트와의 만남이 끝나고, 콩쿠르까지 성공적으로 마쳤지만, 폴은 우울하다. 초조하고 불안한 감정 속에서 그는 마담 프루스트를 생각하며, 마들렌과 홍차를 마신다. 그리고 그의 머릿 속에 남아있는 작은 기억의 조합과 이모들의 말을 통해, 그의 부모가 비참한 사고로 죽게된 순간을 떠올린다.
악몽의 순간을 겪은 폴은 그 때부터 말을 잃은 것이다.
고통을 떠올리지 않는 게 답이라고 생각하며 폴을 보살폈던 이모들의 원칙이 깨지는 순간이다. 폴은 자신을 괴롭히던 고통의 순간을 직면하면서, 힘들지만 한 단계 성장한다. 마담 프루스트가 깨우쳐준 '트라우마에 마주하는 법'을 통해, 그는 좀 더 정상적인 삶을 살게 된다.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프루스트의 정원에서 폴은 꿈을 꾼다. 그것은 소유하거나 열망하는 미래에 대한 것이 아니라, 외면하고 싶었던 과거와의 조우다.
고통을 피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하지만, 자신의 고통을 들여다보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상처받은 내면을 치유하고, 더욱 밝은 존재로도 나아갈 수 있다. 폴이 그것을 말해준다.
빛과 식물, 향긋한 홍차 향기, 마들렌
폴(귀욤 고익스)
마담 프루스트(앤 르 니)
애니 이모(베르나데트 라폼)
안나 이모(헬렌 벤상)
키 카잉(미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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